▲ 자연과 더불어 농주 한잔을 나누는 기쁨

을 통해 을 깨치는 지혜

 

농사를 지으면서 가장 지당한 얘기가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는 말 일 것이다. 이는 불교의 우주관이자 가장 기본이 되는 진리인 연기법(緣起法)’과 같은 뜻이다. 연기법은 부처님께서 처음에 이해했던 진리의 내용이기에, 불교의 방대한 사상은 이 연기법을 근본으로 하고 있다.

 

좋은 씨앗을 심어야 좋은 열매를 맺는다.

농사는 반드시 뿌린 대로 거둔다.

보람 없는 땀은 없으며, 몸소 실천하지 않고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내 육신을 건강하게 만드는 것도 땀이고, 내 영혼을 행복하게 하는 것도 땀이다.

 

부모님은 온 몸으로 살아가는 지혜를 가르쳐 주셨다. 푸르스름한 새벽부터 땅거미가 짙게 깔릴 때 까지 일을 하며 하나하나 성취해 가는 법을 몸소 보여주셨다. 노력하지 않고 성공하기를 원하는 것은 요행을 바라는 것이며 욕심이며, 반대로 고생한 만큼 반드시 보람이 있다는 말이다. 부처님의 대오각성 핵심진리가 농부의 평범한 일반상식과 하나라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그러나 우리는 진리 따로, 지식 따로, 지혜 따로, 삶 따로 생각하기에 이 평범하고 위대한 진리를 간과하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우리 부모님은 농사짓는 것이 공부고 삶의 지혜라고 가르치셨던 것 같다. 요즘은 농업기술센터에 탈곡한 콩 자루를 가져가면 선별기에서 순식간에 대, , , 불량, 4 종류로 분류해 준다. 그러나 예전에는 콩을 수확한 후에 씨앗 할 콩과 먹을 수 없는 콩을 일일이 선별해야만 했다.

어머니는 우리형제들에게 콩 고르기경합을 시키고 잘 고른 만큼 용돈을 주셨다. 누나는 둥근 쟁반 한쪽에 콩을 올려놓고 쟁반을 살짝 기울여 가면서 고르고 아우는 개다리소반에 펴놓고 일일이 골라냈다. 내 도구는 채 위쪽부분에 적당량의 콩을 올려놓고 채를 살살 흔들어 콩이 굴러내려 오도록 하면 제일 굵고 똘똘한 콩만 아래로 내려오고 쭉정이나 작은 콩들은 채의 우둘투둘한 곳에 걸리게 된다. 아마 콩 고르기 실력은 내가 가장 나았을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어머니는 은연중에 노동을 놀이로 바꾸셨고 세상에는 공짜가 없다는 공부도 시키신 것이었다.

 

삶을 통해 앎을 깨우치는 것이야말로 진짜 공부가 아니겠는가. 옛 선인들은 공부(工夫)란 상통천문(上通天文)하고 하달지리(下達地理)하며, 중찰인사(中察人事) 하는 것이다라고 하셨다. 공부에서 ()’이라는 글자는 ‘l’ 그리고 삼 획으로 만들어졌다. 위쪽의 는 하늘의 이치를 깨닫는 것이며, 아래쪽의 는 땅의 이치를 깨닫는 것이다. 그리고 가운데 ‘l’는 세상과 관계되는 것을 부지런히 배우고 익히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하늘과 땅의 이치를 알지 못하고 세상과 관련된 지식만 습득한다면 이는 제대로 된 공부가 아니며, 세상의 흐름을 알지 못하고 하늘과 땅의 이치를 깨닫는데 전력을 구하는 것 또한 반쪽짜리 공부가 아니겠는가.

곡식농사는 1년이면 수확하고 과일농사는 3년이면 수확한다. 그러나 자식농사의 경우 최소 30년이고 50년이 되도 수확한다는 보장이 없는 농사다. 그만큼 어려운 것이 자식농사인데 제대로 좋은 씨앗을 뿌리지 않고 좋은 열매를 맺기를 바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또한, 좋은 씨앗을 고르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 키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도 농사의 기본 상식이자 자식을 키우는 것도 이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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