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사단 윤 아무개 일병이 선임병들의 지속적인 집단폭행과 하급간부의 묵인으로 사망에 이르게 되었다는 경위를 전해들은 국민들이 상당한 충격을 받고 있다. 그간 곯을 대로 곯은 병영 내 폭행의 대물림 논란까지 불거지면서 군대의 근간이랄 수 있는 사병들의 병영 문화를 총체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방부가 병영 내 사건·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지금부터 현역복무 부적합 병사의 전역 절차를 대폭 단순화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국방부 관계자는 4일 “정신과 진단서의 전역 절차를 기존 2~3개월에서 2~3주로 단축했다”고 밝혔다. 국방부는 22사단 GOP 임 병장 총기사건과 사병들의 자살 등 군대 밖으로 터져 나오고 있는 불미스런 사건들을 미연에 방지하자면 현역 복무 부적합 심사 강화를 통해 보호관심병사들을 최대한 빨리 귀가 조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국방부의 대응은 좀 늦은 감이 있으나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어떤 제도를 하드웨어에 비유한다면 그 제도를 작동하는 사람들은 소프트웨어에 비유할 수 있다. 컴퓨터 성능이 뛰어나다고 하더라도 컴퓨터에 장착되어 가동되는 프로그램이 불량하다면 바라는 결과를 얻지 못한다. 모든 소망하는 일의 달성은 결국 사람 마음에 달려 있다는 것에는 누구나 쉽게 수긍하고 있지만 우리는 어느새 시스템의 매뉴얼만 너무 믿은 나머지 변화하는 상황을 보지 못하고 요동치는 현실에 무사안일하게 기계적으로 대응하다가 낭패를 보거나 나중에는 손도 써보기 힘들 정도로 악화된 상황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보고 있을 수밖에 없는 비극적 경험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을 최근 일련의 사태를 통해 보아 왔다.

윤 일병 사건만 보더라도 현재 가지고 있는 제도만으로도 충분히 예방할 수 있었다고 본다. 폐쇄적인 의무대에서 관심병사등급 A-B-C 분류체계에서 B급인 가혹행위 위험대상자로 분류되는 A병장의 주도하에 이뤄지고 있는 폭행을 목격한 B하사가 제대로 된 조치만 취했더라면 지금쯤 윤 일병은 군 생활을 계속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 범죄를 묵인한 B하사는 군대에서 빠릿빠릿하게 사병 노릇을 하지 못하는 윤 일병에게 가해지는 집단 폭행을 ‘얼차려’ 정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B하사가 보기에 집단폭행은 ‘묵인’하고 말 것도 없는 문제가 안 되는 행위였다. 이것이 인식의 차이일 것이다. 이러한 인식의 차이는 가치관의 차이에서 비롯되며 가치관을 만드는 것은 집단의 공동체가 만들어나가는 문화라는 배경을 등지고 있기에 결국 좋은 군대란 좋은 병영 문화를 가져야 한다는 논리가 성립하는 것이다.

강대국 틈바구니라는 지정학적 정치학을 고려해 볼 때 한국이 모병제로 전환하기는 당분간 쉽지 않아 보인다. 국민개병제가 유지될 거라고 본다면 이번 기회에 병영 문화를 개선하기 위한 먼 미래를 내다보는 프로그램 개발에 나서야 할 것이다. 그 중에서도 역량을 모아야 할 부분이 군대라는 특수 사회에서 계급적 위계질서와 사병들의 인권 의식을 어떻게 조화시키느냐는 문제에 귀결된다. 사람은 감정의 동물이라 서로 부딪치다 보면 뜻하지 않은 사고를 만들어낼 수 있다. 군대는 특히 더 그러하다. 상하 명령체계를 이유 없이 거부하는 군인에게는 당연히 물리력이 동원돼야 한다. 그러나 이때의 물리력 행사는 정교한 매뉴얼에 기초해야 한다. 가능한 모든 상수와 변수를 고려해서 얼차려의 종류와 등급을 고려하되, 이에 감정적 개입을 철저히 배제시킬 수 있도록 하는 선임병 및 간부 훈련이 심리학적·정신의학적 관점에서 강화돼야 할 것이다.

옛날 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학교 담임선생님한테 사랑의 매를 맞아본 기억이 남아 있을 것이다. 스스로 흥분해서 마구 때리는 선생이 있는가 하면 차분한 상태로 진정 학생의 장래를 걱정해 교육적 효과를 고려해서 체벌을 가하는 선생님이 있었다. 과거에는 군대 갔다 오면 사람 돼서 나온다는 말이 있었다. 이는 군대의 교육적 힘을 지적하는 말일 것이다. 이를 병영 문화 혁신의 한 축으로 삼아야 한다. 군대는 본질적으로 국민과 국토와 국체를 지켜야 하는 사명을 완수하는 무력단체란 기본 바탕을 지켜가면서 젊은이들이 다양한 훈련을 거치게 함으로써 더 강하고 더 책임감 있는 인간으로 만들어 나갈 수 있는 교육기관으로 거듭날 수 있는 중차대한 시점에 와 있는 것이다. 제발 이 점을 놓치지 말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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