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 날짜 집중, 속전속결 안건 통과 등은 재고해 봐야

3월은 12월 결산 상장법인의 정기 주주총회가 열리는 달이다. 주총이 열리게 되면 달갑지 않은,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 찾아왔다.

속칭 ‘총회꾼’이다. 이들은 상장회사들의 주총의 순조로운 진행을 방해하면서 자신들의 실속을 챙기는 무리들이다.

지금은 총회꾼들이 자취를 감춰 이들의 발호(跋扈)도 종적이 묘연하지만 80년대, 90년대만 하더라도 주총시즌이면 이들의 무용담이 신문지상에 오르내리곤 했다.

상장사 직원들은 주총에 앞서 미리 총회꾼들의 블랙리스트를 확보하고, 사진까지 입수해 이들의 주주총회장 입장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여의치 않을 경우 뒷거래를 통해서라도 이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원만한 주주총회 진행을 기획했다.

총회꾼이 사라진 요즘 주총 총회장에는 ‘거수기’들이 등장했다.

주주총회가 요식 절차로 전락하면서 속전속결로, 일사천리로 상정 안건을 처리하고 있어 한 해의 경영실적을 되새기면서 차기 경영 비전을 세우는 본질적인 주총 의미가 퇴색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지난 3월 14일처럼 100여개가 넘는 주요 기업들이 같은 날 같은 시간대에 일제히 주총을 열게 되면 여러 회사 주식을 가진 소액주주들은 아예 주총에 참여할 기회를 원천봉쇄 당한다.

어렵게 요령을 부려 참석해도 30분 만에 안건을 처리하고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날 열린 주요 기업들의 주총 행사장에서도 입을 맞춘 듯 일사천리로 안건을 통과시키는 모습이 목격되었다.

포스코는 주총에서 지난해 재무제표 승인 등 3개 안건을 통과시켰다. 한 임원이 배당금 안건을 상정하자 곳곳에서 "이의 없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면서 안건은 통과됐다. 1호 안건을 통과시키는 데 걸린 시간은 1분 남짓이었다.

현대자동차 주총도, 삼성전자 주총도 비슷한 방식이었다. 주주 한 명이 일어나 “안건을 통과시켜 달라”고 제청(提請)하면 나머지 주주들이 여기에 “동의합니다” “동의합니다” 이구동성으로 찬성하는 방식으로 2~3분마다 안건이 하나씩 통과됐다.

이렇게 되면 마치 사전에 잘 짜여 진 각본에 맞춰 주총이 연출되는 듯한 인상을 지울 수 없게 된다. 지난 시절 총회를 방해하던 총회꾼이 그리운 대목이다.

과거에는 주총 시즌이 되면 명동일대, 여의도 일대에는 주총장에서 상장사들이 소액주주들에게 한 아름씩 선물을 안겨줬다. 주총이 끝나면 이를 가지고 가는 소액주주들이 대열을 이뤘다.

우산이건, 그릇세트건, 시계건 하는 것들이 총회 기념품으로 나왔다.

그 때는 축제였다. 주총 장에서는 경영진을 호되게 질타하는 소액주주들이 있었고, 이들의 말을 경청하면서 경영 지침에 반영하는 사례도 있었다. 말은 쓰지만 경영전략에는 보약이 됐다.

다시금 찾아온 주총 시즌이 절정에 다다르고 있는 이 즈음 온고지신(溫故知新)을 바라는 한담을 엮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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