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창]세월호 참사에 등돌린 민심, 무관심 아닌 분노다

▲ 3일 오후 서울 마포구 홍대입구 부근 거리에서 세월호 참사 희생자와 무책임한 정부를 규탄하는 시민들이 '가만히 있으라'가 적힌 손피켓과 국화꽃을 들고 침묵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 / 유용준 기자

6.4지방선거를 불과 1개월도 채 남겨두지 않은 시점인데, 정치권에 기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무당층이 크게 증가하고 있는 것. 여당이든 야당이든 가릴 것 없이 현재 정치권에 대해 반감과 불신을 가진 국민들이 증가하고 있다는 의미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선거가 다가올수록 무당층은 줄어들게 마련이다. 여야 전선이 구축되면서 진영논리가 작용하게 되고, 평소 정치에 관심을 두지 않던 사람들도 어느 한 쪽에 대한 지지성향을 보이게 되기 때문이다. ‘결집’으로 불릴 수 있는 이 같은 현상은 특히 대선과 총선, 지방선거 등 전국규모로 치러지는 선거일수록 뚜렷하게 나타난다.

그런데 이번 지방선거의 경우 어찌된 일인지 이런 결집 현상이 좀처럼 나타나지 않고, 오히려 정치를 도외시하는 경향이 더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다양한 이유들이 있겠지만, 세월호 참사가 가장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국민의 생명을 보호해야 할 책임과 의무를 망각한 여야 정치권 전체를 향한 국민적 분노가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 증가하고 있는 무당층은 이슈에 따라 움직이는 스윙보터(swing voter)와는 구분되어진다.

◆문제는 생존권, 기본권이다!
최근 발표된 일부 여론조사 결과들을 살펴보자. 세월호 참사 직후 발표된 결과들에서부터 무당층은 눈에 띄게 증가폭을 키우고 있다. <리얼미터>의 4월 21~25일 조사에서 무당층은 18.2%였지만, 1주 지난 4월 28일~5월 2일 조사에서는 무려 10%p가까이 증가한 28.1%를 기록했다.

<한국갤럽> 조사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난다. 4월 28일~30일 조사에서 무당층은 2주 전 대비 8%p 크게 증가한 34%를 기록했다. 또 다른 여론조사전문기관 <마크로밀엠브레인>의 4월 30일 조사에서는 무당층 비율이 무려 43.8%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선거를 불과 한 달도 채 남겨두지 않은 시점에 무당층 비율이 이처럼 높다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지 않을 수 없다.

실제로, 2010년 6.2지방선거와 비교해서도 크게 다른 모습이다. 당시에도 천안함 침몰 사건(3월 26일)이 발생해 온 국민이 슬픔에 잠겨 있었다. 하지만, 무당층이 지금처럼 선거를 목전에 두고까지 증가하지는 않았다. 선거를 1개월여 앞두고 있던, 지금과 유사한 시점인 2010년 4월 26일~30일 실시됐던 <리얼미터> 조사 결과를 살펴보면, 무당층은 18.2%에 불과했다. 천안함이 안보이슈화 되면서 보수결집력을 높였고, 또 그런 보수결집에 반대급부로 ‘언더독’ 효과가 나타나면서 무당층이 줄어들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 세월호 이슈는 안보의 문제가 아닌, 국민 실생활과 직결되는 ‘생명’과 ‘안전’ 문제라는 점에서 전혀 다른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2008년 광장에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이 타올랐던 이유처럼 지금 국민들도 나와 내 가족의 안녕을 정부와 정치권에 믿고 맡기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어찌 보면, 지난 연말 우리 사회를 들끓게 했던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 열풍보다, KTX 민영화에 분노한 민심보다 더 큰 분노의 불길이 타오르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도 정부와 여야 정치권은 여전히 엉뚱하기만 하다. 세월호 사고에 사죄한다며 머리를 조아리지만, 뒤로는 끊임없이 국민 정서에 배치되는 일들을 벌여 분노를 키우고 있다. 정부 고위관료들의 개념 없는 행동들은 물론이고, 여당은 ‘박심’ 논란으로 치고받으며 자중지란을 벌이고 있다.

그렇다고 야당이 잘하고 있느냐, 그것도 아니다. 야당 또한 전략공천 파문으로 당 안팎이 시끌벅적한 상황이다. 그러면서 서로 네 탓만 하며 또 싸우고 있으니, 양비론을 넘어 정치권 전반에 대한 회의와 불신-분노가 치솟아 오르고 있는 것이다.

◆되풀이 되는 삼풍백화점 붕괴 역사
정치인이라면 반드시 잊지 말아야 할 우리의 역사가 있다. 1994년 10월 24일 성수대교가 붕괴됐고, 같은 해 11월 20일에는 종암동육교가 붕괴되는 참혹한 사고가 이어졌다. 그리고 이듬해인 95년 4월 28일에는 대구 지하철 공사장 가스폭발 사고가 있었고, 6월 29일에는 삼풍백화점이 붕괴되는 참사가 발생했다.

1994년과 1995년. 수많은 안전사고로 국민들이 생명에 위협을 느끼며 불안에 떨고 있을 때 정치인들은 무엇을 했었던가. 1990년 3당 합당 과정에서 내각제 개헌을 약속받았던 JP(김종필)는 YS(김영삼)가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며 민자당을 탈당하고 95년 3월 자민련을 창당했다.

그리고 정계은퇴를 선언했던 DJ(김대중)는 같은 해 정치에 복귀해 사실상 ‘DJ신당’으로 불리는 새정치국민회의를 9월에 창당했다. 그리고 그해 연말을 거쳐 집권 여당이었던 민자당은 당명을 바꿔 신한국당으로 재창당했다. 국민들이 불안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는 사회적 혼란 속에서도 정치인들은 끊임없이 이합집산하며 국민 정서와 무관하게 움직였던 것이다.

1994년과 1995년 이 당시 무당층은 무려 60%대를 오르내리고 있었다. 안전 불감증에 걸려 있던 혼란한 사회상황도 문제였지만, 아파하는 국민들을 따스하게 감싸주지 못했던 정치권에 대한 반감도 큰 문제였던 것이다.

지금, 그때처럼 더 이상의 정치에 대한 불신과 분노가 번져서는 안 될 것이다. 여당이든 야당이든, 누구에게도 무당층이 증가하는 것은 결코 이로울 리 없다. 아무리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는 상황이라지만, 지금 가장 깊이 반성하고 누구보다 자중해야 할 사람들은 바로 정치인들이다. [마포땡큐뉴스 / 정흥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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