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요금누진제’ 해결은 한전을 개혁해야...

토론회를 마치고 김연화 (사)소비자공익네트워크 회장이 감사 인사와 함게 마무리 발언을 하고 있다. ⓒ원명국

유난히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올 여름 서민들은 누진제가 적용되는 전기요금이 무서워 냉방기도 마음대로 틀지 못하고 있다. 박 대통령이 뒤늦게 이 같은 국민들의 불만을 전해 듣고 전기요금을 감면하겠다는 뜻을 밝혔고, 그 후 정치권에서 논의되기 시작했지만 전기요금 감면폭은 기대한 만큼 크지 않아 겨우 생색내기용이라는 분노의 목소리가 들리고 있다.

(사)소비자공익네트워크는 오늘 이 문제에 대해 전문가의 목소리를 듣고 소비자들의 뜻을 전달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이날 오후 2시 서울 마포구 합정동에 있는 소비자공익네트워크 세미나실에서 ‘전기요금 누진제 어떻게 할 것인가?’를 주제로 토론회가 열렸다.

OECD 국가 수준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전기요금

주제발표를 맡은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에너지정책학과 교수는 누진요금제에 대해 “일정 수준의 기본요금 이외에 사용량 요금을 부과하는데 몇 개의 구간을 나눠 구간별 요율이 증가하는 형태로 설계된 요금제를 의미한다”며 “이에 따라 기본요금은 6구간이 1구간의 31.6배, 사용량 요금은 6구간이 1구간의 11.7배로 다(多)소비를 규제(징벌)하는 성격을 갖는다”고 설명했다.
유 교수는 현행 누진요금제의 문제점으로 “과거에는 1~2구간 소비가구가 저소득층이었지만 가구 구조의 변화로 인해 고소득층 1인가구가 크게 늘면서 고소득층이 전기를 원가 이하로 사용하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서 “2013년 국회 예산정책처의 보고서에 의하면 최저생계비 미만인 절대적 빈곤 가구이면서 5인 이상 가구는 누진요금제로 165.7원의 전기를 사용하는 반면 최저생계비의 5배 이상 소득이 높은 1인 가구는 111.1원이라는 저렴한 가격의 전기를 사용해 에너지 복지에 역행하고 있다”며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11.7배의 현행 누진율을 2~4배 수준으로 완화하여 하위 구간의 요금을 인상하고 상위 구간의 요금을 인하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유 교수는 한국의 주택용 전력요금제를 국제적으로 비교해도 한국은 6단계의 누진단계와 11.7배의 누진율을 적용하고 있어서 중국(3단계/1.5배), 일본(3단계/1.3~1.6배), 미국(2~4단계/1.1~4배), 캐나다(2~3단계/1.1~1.5배), 호주(2~5단계/1.1~1.5배)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라고 지적하면서 “구간 수 축소 및 누진율 완화로 OECD 국가 등 선진국의 수준에 맞춰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한전이 대가족 요금할인의 한도 폐지를 추진할 것과 전기요금 도매가격 연동제 도입을 강조했다.

강승진 한국산업기술대학교 교수가 좌장을 맡아 진행한 토론회에는 박강수 시사포커스 회장을 비롯해 김창섭 가천대학교 교수, 이종수 서울대학교 교수, 조영탁 한밭대학교 교수, 김성수 한국산업기술대학교 교수, 이혜영 (사)소비자공익네트워크 본부장이 참석했다.
토론자 대부분은 유승훈 교수의 주제발표 내용에 공감을 표시하면서 전기요금 누진제에 대해서는 이번 기회에 반드시 손을 제대로 봐서 서민들이 마음 놓고 전기를 사용함으로써 겨울철 추위와 여름철 더위를 극복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한 목소리를 내었다.

김창섭 교수는 정부가 이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TF팀 구성과 운영을 어떻게 하느냐가 문제라며 “실력있는 전문가들과 이해 당사자들, 관계기관으로 구성해 적어도 2019년까지는 마무리 짓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이종수 교수는 “전기가격을 복지 수단으로 삼으면 시장이 왜곡된다”고 지적하고 “저소득층은 에너지 바우처로 지원하고 고소득층은 소득세를 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유 교수가 주장한 ‘전기요금 도매가격 연동제 도입’에 대해서도 전력시장의 왜곡을 우려하며 신중한 입장을 나타냈다.

박강수 회장(오른쪽)이 한전을 강하게 비판하며 신이 내린 직장으로 변한 한전을 개혁해야 누진제로 인한 서민들의 전기요금 폭탄을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왼쪽은 조영탁 한밭대 교수. 사진/원명국 기자

조영탁 교수는 “전기세 누진제가 요금제도, 절전제도, 분배제도 등 이 세 가지 목적을 하나로 만든 것”이라며 “에너지 가격이 떨어질 때 전기가격도 인하하는 가격 연동제는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성수 교수는 “누진제는 완화하되 장기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지만 전기요금은 최대한 줄일 필요가 있다”며 “전기 소비가 늘면 발전소를 추가 건설해야 하고 이를 가동함으로써 발생하는 미세먼지 문제도 해결해야 하기 때문에 전기요금 인상요인이 된다”고 지적했다.

전기생산·판매 독점하는 한전 강하게 비판

박강수 회장은 전기요금 문제에 대해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 눈길을 끌었다. 박 회장은 한전의 개혁을 통해 서민들에게 여름철 냉방기 사용으로 부과되는 요금폭탄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여 이날 참석한 소비자단체와 시민들로부터 여러 차례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박 회장은 “전기요금 누진제의 문제가 아니라 근본적으로 신의 직장이라고 불리는 한전을 개혁해야 한다”며 “전기생산에서 판매에 이르기까지 전면적인 시스템 개선과 전기 생산원가를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작년에 11조원이 넘는 수익을 낸 한전과 정치권, 정부가 세대당 2만원도 안되는 할인으로 생색을 내고 있다”며 “독점적 시장 지위를 누리며 저유가로 전력 구매단가가 계속 하락하는데도 판매단가를 인상하고 있는 한전은 악질 공기업으로 대국민 사기극을 벌이고 있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에 공감하는 시민들은 여러 차례 박수를 쳤고, 토론회의 열기는 한껏 달아올랐다.

이혜영 소비자네트워크 본부장은 “냉방기 사용으로 전기요금 폭탄을 맞은 소비자들이 집단소송을 준비하고 있다”며 소비자 중심의 전기요금제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토론을 다 마친 후 학계의 전문가로 참석한 일부 패널들은 박강수 회장의 주장에 대해 잘못 인식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며 한전의 입장을 대변하는 듯한 발언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청중석으로 질문의 기회가 주어지자 마이크를 잡은 시민들은 한결같이 거대 공기업 한전이 최근 엄청난 영업 이익을 내고도 여전히 변화를 보이지 않는 태도를 지적하며 울분을 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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